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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한국,미국,일본,영국에 미친 영향과 대응

by JIMICHA WORLD 2025. 2. 9.

 

1. 리먼브라더스 파산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개과정

리먼브라더스는 1850년 설립된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으로,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월스트리트의 상징적인 금융기관이었습니다. 2008915, 6,39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한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었습니다.

파산의 주요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면, 리먼브라더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부동산 시장 호황을 틈타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차주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관련 투자를 공격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모기지 채권을 기초로 한 파생상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했습니다.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이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습니다.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모기지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금융상품의 가치가 폭락했습니다. 리먼브라더스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20089월 초, 리먼브라더스는 한국산업은행과 매각 협상을 진행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어 영국 바클레이즈은행과의 인수 협상도 결렬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전에 베어스턴스를 구제한 것과 달리, 리먼브라더스에 대해서는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파산 선언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금융기관들 간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은행간 대출시장이 마비되었고,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했습니다. 대형 보험회사 AIG도 파산 위기에 처했으며, 미국 정부는 AIG에 대해서는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했습니다.

위기는 금융권을 넘어 실물경제로 급속히 전이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투자와 고용이 급감했습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경기침체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전례 없는 규모의 구제책을 시행했습니다. 미국은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도입했고, 연방준비제도는 제로금리 정책과 양적완화를 실시했습니다. 다른 국가들도 금리인하, 유동성 공급, 재정지출 확대 등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금융규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하여 금융감독을 강화했고, 국제적으로도 바젤 III를 통해 은행의 자본건전성 기준이 강화되었습니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지면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재조명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현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과 상호연계성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금융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복잡한 금융상품들이 시스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금융정책과 규제의 중요한 기준점이 되고 있습니다.

 

2.리먼브라더스 파산이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과 대응

 

미국은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2008915,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리먼브라더스가 6,390억 달러의 자산과 함께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미국 금융시장은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 사례였으며, 전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금융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504.48포인트(4.4%) 폭락했고, 이는 20019/11 테러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습니다. 은행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대출을 꺼리면서 은행간 대출시장이 완전히 경색되었고, 이는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되었습니다.

 

특히 고용시장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실업률은 20085%대에서 200910%까지 급등했으며, 이는 약 8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음을 의미합니다. 주택시장은 완전히 붕괴되어 수백만 가구가 주택을 잃었고, 모기지 시장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는 전례 없는 규모의 구제책을 시행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AIG 보험사에 대한 850억 달러의 긴급지원이었습니다. 이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상징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하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하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도드-프랭크 월가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 법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소비자 보호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는 등 포괄적인 금융개혁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은행들은 더 많은 자본을 보유해야 했고,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제한되었으며, 정기적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은행들의 수익성 저하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구제책과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사태는 금융시장의 과도한 위험추구와 불충분한 규제가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교훈이 되었습니다.

 

 

3.리먼브라더스 파산이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과 대응


한국 경제는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인해 심각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리먼브라더스 관련 자산은 7억 2천만 달러에 달했으며, 파산 선언 직후 주가가 6.10% 하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실물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제조업 생산은 2008년 10월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되어 2009년 1월에는 -27%까지 하락했습니다. 2008년 4분기에는 민간소비가 4.5% 감소하고, 설비투자는 13.9% 감소했으며, 수출과 수입이 각각 12.5%, 15.5% 감소하는 등 전반적인 경제지표가 악화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정부는 신속하고 과감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한국은행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기준금리를 여섯 차례 인하했으며, 미국,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왑 계약을 통해 외화 유동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지출 확대와 경기부양책을 시행했습니다. SOC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 창출 사업을 적극 추진했으며, 자동차 관련 세제 지원 등 산업 지원책도 실시했습니다.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 덕분에 한국은 G20 국가 중 위기 극복 속도가 6번째로 빨랐으며,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경제회복을 달성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2008년 말 2,012억 달러에서 2013년 7월 3,297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18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대외건전성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 경제에 구조적인 변화도 가져왔습니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가 더욱 강화되었고, 금융감독 체계가 개선되었으며,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리스크 관리, 내수시장 활성화의 필요성, 신성장동력 발굴의 중요성 등 새로운 과제도 남겼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경제위기에 대비하는 중요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특히 신속한 정책 대응과 금융시장 안정화의 중요성, 그리고 실물경제 지원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리먼브라더스 파산이 일본 경제에 미친 영향과 대응

일본은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인해 4,000억 엔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으며, 수출 의존적 경제구조로 인해 글로벌 수요 감소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니케이 225 지수는 41.4% 급락했고,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수출기업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도요타, 소니 등 주요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이는 일본 경제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조업 생산은 20084분기에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했으며, 수출은 20091월에 45.7%라는 기록적인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실업률은 5.5%까지 상승했고, 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종신고용 시스템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더욱이 이미 장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일본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디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일본은행은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면서 기업어음과 회사채 매입 등 비전통적 금융정책을 도입했습니다. 정부는 총 75조 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했으며, 이는 GDP15%에 달하는 규모였습니다. 고용 안정화를 위해 기업에 대한 고용유지 지원금을 확대했고, 중소기업 금융지원도 강화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엔화 강세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일본은행은 수차례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엔화 가치 상승을 억제하려 했으며, 이는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보호를 위한 조치였습니다. 또한 기업들의 해외 M&A를 지원하여 엔고 현상을 활용한 해외 진출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의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이미 존재하던 구조적 문제들, 즉 고령화, 재정적자, 디플레이션 등의 문제가 금융위기와 맞물려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라는 새로운 경제정책을 도입하게 되는데, 이는 리먼사태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 대응의 일환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경제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수출 의존적 경제구조의 취약성, 내수시장 활성화의 중요성, 그리고 적극적인 통화정책의 필요성 등을 재인식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훈은 이후 일본의 경제정책 방향 설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일본 경제정책의 중요한 참고사례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5.리먼브라더스 파산이 영국 경제에 미친 영향과 대응

 

영국은 글로벌 금융허브인 런던을 중심으로 리먼브라더스 파산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FTSE 지수는 3.92% 급락했으며, 파운드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금융시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특히 영국의 대형 은행들이 리먼브라더스와 긴밀한 거래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금융서비스 산업이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영국은 금융위기로 인해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받았습니다. 실업률이 급증했고,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었으며,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특히 노던록 은행의 파산은 영국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전례 없는 규모의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을 실시했습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와 로이즈뱅킹그룹 등 주요 은행들을 사실상 국유화했으며, 이는 영국 금융산업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정부 개입이었습니다.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추는 초저금리 정책을 시행하고, 대규모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금융감독 체계도 전면적으로 개편되었습니다. 기존의 금융감독청(FSA)을 해체하고, 건전성감독기구(PRA)와 금융행위감독기구(FCA)를 신설하여 이원화된 감독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은행의 자본건전성 규제를 강화하고,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업무를 분리하는 '링펜싱'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다양한 경기부양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부가가치세를 일시적으로 인하하고, 주택구매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중소기업 대출 지원을 확대했습니다. 또한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정부 개입에도 불구하고 영국 경제의 회복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금융산업의 위축은 런던의 국제금융센터로서의 위상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정부의 재정적자는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이후 긴축재정 정책으로 이어져, 경제회복을 더욱 지연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리먼사태는 영국 금융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영국은 금융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산업구조의 다변화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금융규제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영국의 금융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브렉시트 이후 런던 금융시장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정책 수립에 있어, 리먼사태의 교훈은 여전히 중요한 참고사항이 되고 있습니다.